난생 처음하는 식당,

그것도 겁도 없이 엄청난 규모로 저질러 버린 음식점,

외식산업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다들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았었다.

 

하지만 나는 성공했다.

그것도 아주 큰 성공을 거뒀다.

지하1층, 지상 3층의 대형음식점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꽉꽉 들어찼다.

저녁시간에는 2~30분씩 기다렸다 먹는 것은 보통이었고

손님들도 의례 만나식당에 가면 기다렸다가 먹어야 되는 걸로 생각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소위 대박이 터졌다.

 

회사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유능한 직원들도 충원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동생들이 일을 나누어 맡아주었다.

듬직한 셋째동생이 자청해서 새벽장을 봐주기 시작했다.

둘째동생이 관리부에 들어오면서 영업마감도 직접하지 않아도 되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대흥점, 둔산점, 타임월드점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분점을 내는 것 마다 모두 성황을 이뤘다.

나는 시쳇말로 돈벼락을 맞고 있었고

날로 사업이 커져감에 따라 간뎅이(?)도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경남 산청의 두메산골 시골에서 열린  우리밀 수매잔치에 참석했다.

식당의 메뉴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이 샤브샤브였다.

특히 샤브샤브를 먹고나서 그 육수에 끓여먹는 국수가 인기가 있었는데

그 국수를 우리밀로 만들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밀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시골의 한 마을과 위탁재배계약을 맺어 우리밀을 조달하고 있던 터였다.

머리도 식힐 겸, 대신 농사를 지어주시는 농민들에게 감사인사도 할 겸

우리밀 수매잔치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난생 처음 가슴이 저리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시커먼 얼굴에 밭고랑보다 깊이 패인 주름살.......

하지만 얼마되지도 않는 수매자금을 들고 흐드러지게 웃는 시골할배들....

막걸리가 묻은 입가를 소맷자락으로 쑥 훌치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고 만 것이다.

 

"젊은 놈이 밥장사따위로 청춘을 썩히고 있단 말인가?   

 농촌을 살려야겠다.   이 아름다운 분들의 눈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하고 싶던 일이 우리밀살리기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아니....해야만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치기어린 생각인가!

겨우 식당하나 만들어서 조금 장사가 된다고..........

운좋게도 푼돈 조금 벌었다고...........

농촌을 살리네 뭐네 하며 공명심에 들 뜬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초반의 약간의 성공으로 인해 어이없는 자만심에 빠져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만심은 끝없는 나락으로 나를 유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