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담배부터 끊었다.

하루에 세곽씩 피워대던 담배를 끊었다.

아무런 보조제없이 그냥 깡으로 끊었다.

우선 금연이라도 해서 그토록 담배를 끊기를 바라셨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재기를 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했다.

 

그리고 채권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화의를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나의 유일한 희망은 화의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원래 회사가 부도가 나면

그 회사의 모든 자산은 물론 기타 담보로 잡힌 모든 것들을 경매에 붙인다.

그래서 그 돈을 채권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이는 채권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조치이며 또한 채권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회사를 어떻게 해서든 살리려고 하다가 무너진 것이어서

국수공장은 물론 음식점, 부동산, 심지어 부모님의 집부터 친척분의 여관까지

모조리 담보로 잡혀있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경매로 넘어가고

말 그대로 완전히 거지가 되서 길거리에 나 앉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재기라는 것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었다.

 

유일한 희망이 화의였다.

한마디로 화의란 채권자들이 회사를 경매처분하지 않고 기다려주겠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100%의 채권자가 모두 동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75%이상의 채권자만 동의하면 강제적인 경매처분을 막고

회사가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일정기간을 기다려주는 데다가

재기하기 쉽도록 어느 정도의 이자도 감면해주는 그런 제도이다.

 

만일 화의만 성사된다면

공장은 물론 음식점, 부모님의 집까지 아무것도 경매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공장과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부채를 착실히 갚아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화의를 성사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화의가 성사될 확률은 대단히 낮았다.

신문등에 보면 대기업들은 대부분 화의나 워크아웃, 법정관리등이 쉽게 되지만

우리같은 중소기업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담보를 충실하게 잡힌 우리의 경우에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기업들처럼 담보가 없는 경우에는 경매에 넘겨봐야 별 소득이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화의나 법정관리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같이 담보가 충분한 경우에는 화의에 동의할 이유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경매처분하면 될 것을

무엇하러 몇년씩이나 부채를 동결해주고

이자까지 깎아줘가면서 그런 위험한 짓을 하겠는가.

그래서 부도가 난 기업중 화의를 성사시킨 회사는 몇 %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99년 8월 13일

화의여부를 결정짓는 최종 재판이 열렸다.

화의를 성사시키기 위한  지난 8개월동안의 노력이 판정을 받는 날이었다.

이 날 채권자의 75%이상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하면

회사는 곧바로 정리절차에 들어가고 모든 것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는 그런 순간이었다.

 

나를 너무도 불안하게 했던 것은 화의에 대한 동의방법이었다.

서면동의는 불가능했고 반드시 채권자가 법정에 참석해야 했었다.

서면동의라면 채권자의 집앞에서 밤새 무릎꿇고 사정을 해서라도 싸인만 받으면 될텐데

안타깝게도 서면동의는 인정되지 않고 반드시 재판에 참석해서 동의여부를 밝혀야 했다.

재판에 참석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불안한 마음속에 재판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되고 판사의 논조가 끝나고 내가 피고인석에 앉을 때까지도

화의동의율이 70%를 간신히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도 애를 썼건만 그것이 한계였던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죽어야 했다.

 

사실 내가 채권자라도 화의에 동의하지는 않을 거다.

빌려준 돈을 몇 년동안 받지 않는다는 것도 짜증나는 일인데

그 동의를 하러 법원까지 찾아와야 한다는 것은 채권자로서는 분명히 웃기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 날은 푹푹 찌는 여름날이었다.

 

난 절망하고 있었다.

담당판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시간을 끌어주고 있었지만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판사가 화의의 부결을 선포하려는 찰라

뒤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채권자가 한분 더 오셨습니다."

 

채권자중 한명이 법정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도 채권액이 많아서 비중이 대단히 큰 채권자의 하나였다.

정말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타난 그는

길이 막혀서 늦었다고 미안해 하면서 화의에 동의표를 던져주었다.

최종 동의율 78%..................

 

화의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