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기적적으로 화의가 성사되었다.

그것은 정말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화의가 됐다구 해서 저절로 회사가 살아나는 것은 아닌 것이었다.

단지 바로 망하게 하지 않고 한번 더 노력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뿐인 것이었다.

회사경영 자체가 정상화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실패의 원인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았다.

 

사실 그 동안 모든 핑계를 IMF에 돌리고 있었다.

손익분기점을 넘겼는데 IMF가 터지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며 남의 탓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원인을 찾아서 고쳐나가야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다른 대기업과 똑같은 것이었다.

한마디로 무리한 투자, 과도한 차입경영이었다.

농촌을 살린다는 치기어린 자만심으로 우리밀사업을 펼친 것 자체가 무리였고

국내최초의 최신설비, 최신공정을 갖춘답시고 무리하게 투자를 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면류시장의 높은 진입장벽을 고려하지 못했다라는 것이다.

농심, 오뚜기, 풀무원등이 점령하고 있는 이 시장에는

우리같은 중소기업의 제품은 진열조차 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선 수익성이 없는 제분사업파트를 비롯하여

기타 여러 사업체의 매각을 추진함과 동시에

중소식품회사가 갖는 유통구조의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의 기술력과 제품품질에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잘 만들면 무조건 잘 팔릴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많이 팔리고 있는 라우동이 그 좋은 예였다.

지금은 동원라우동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원래 만나라우동이라는 자체브랜드로 98년에 이미 출시를 했던 제품이다..

라우동을 개발하면서 반드시 히트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국내최초의 종이용기, 라면과 우동의 틈새시장을 노린 컨셉,

무엇보다도 그렇게 쫄깃한 컵라면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우리밖에 없었다.

"만나 라우동"은 당연히 잘 팔릴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처음 보는 중소기업의 제품을 신뢰하지 않았다.

우선 편의점에 만나라우동을 입점시킬수 조차 없었고

간신히 진열이 되도 소비자들은 이름도 없는 중소기업의 제품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기술만 가지고는 안되겠구나..'

'대기업의 유통망과 마케팅력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되겠다.'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과 손을 잡지 않으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한 이후로

생라면시장의 진출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들고 여기저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몇일간의 밤을 새다시피해서 만든 계획서였다.

라면시장의 현황으로부터 시작해서 건강성, 편리성으로 요약되는 향후 발전방향,기존라면시장의 진입장벽과 그의 돌파방안, 틈새시장의 개척을 통한 생라면시장의 초기진입과 시장성숙화를 위한 세부전략까지 나름대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생각한 모든 계획을 총망라한 사업계획서였다.

이 사업계획서라면

우리의 기술과 대기업의 유통망을 엮는 전략적제휴를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다.

 

사업계획서를 들고 무작정 식품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의 사장실로 찾아갔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냉담했다.

모 제과회사의 사장실에서 5시간을 기다리면서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쫒겨나기도 하고

사장님자택앞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만나야겠다라는 생각에

자택주소를 수소문하다가 이상한 목적(?)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심지어는 간신히 담당부장을 만나 설명을 하고 돌아가려는 데

미처 돌아서지도 않은 내 앞에서 내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수모를 받기도 했다.

 

 

멱살을 잡고 한바탕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가며 고생하던 중

행운은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내가 찾아가지도 않았던 동원산업에서 상담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알고보니 동원산업의 전국영업회의가 유성온천에서 있었는데

마침 내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셨던 것이다.

당연히 식당의 입구에는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것이 동원산업의 강병원사장님의 눈에 띈 것이었다.

 

그렇게 정말 우연히 동원산업과 손을 잡게 되었고

동원생우동, 동원스파게티, 동원생짜장등을 연속해서 출시했다.

동원산업의 막강한 영업력과 조직에 힘입어 매출이 급신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살아나는 과정에서

면류업계 최초로 벤처기업으로 인증을 받는 쾌거도 거두었다.

그동안 쌓은 기술력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사실 요즈음은 소위 개나 소나 다 벤처기업이라는 식의 인식이 많지만

우리가 벤처기업이 된 것은 달랐다.

벤처캐피탈과 짜웅을 해서  만들어 낸 벤처기업이나

재무제표를 조작해서 연구개발비를 부풀려 만든 엉터리 벤처기업이 아니었다.

당당히 특허청으로부터 신기술로 인정을 받은 진짜 벤처기업이 된 것이다.

더군다나 정보통신, 컴퓨터등 첨단 산업도 아닌 식품기술로 인정을 받은 것이었다.

 

듀럼맥을 쓰지 않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새로 개발한 스파게티는 제일제당으로 공급되어

"백설홈조리 스파게티"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찬물에도 먹을 수 있는 찬물라면을 개발하여 일본의 매스컴에까지 보도되었다.

 

지금은 내수물량도 제대로 대지 못해서 수출이 많이 줄었지만

한때는 100만불씩 수출을 하고 홍콩시장의 30%가 넘는 마켓쉐어를 차지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