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으로 회사를 되살려준 것은 바로 라우동이었다.

 

라우동은 동원산업이 아니었으면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98년 처음으로 라우동을 개발하고 얼마나 기뻤었는지 모른다.

우동같은 풍만한 식감의 면발에 얼큰한 라면국물,

우리나라 최초의 종이용기컵라면,

무엇보다도 컵라면으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쫄깃한 면발............

분명히 히트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라면+우동"이라는 의미의 "라우동"이라는 이름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라우동이라는 이름에 대해 특허도 받아놓았다.

(라우동의 상표권은 내게 있고 동원에는 사용승락을 해줬을 뿐이다)

그렇게 "만나라우동"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를 했지만

도무지 팔리지를 않았다.

 

포장이나 디자인도 엉성했던데다가

중소기업의 브랜드로서는 도저히 라면시장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기업과 전략적제휴를 위해 여러 회사들을 돌아다닐 때에도

"만나라우동"을 들고다녔으나 반응은 냉담했었다.

쫄깃한게 신기하기는 하지만 귀찮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동원산업의 강병원사장님이 라우동의 가능성을 인정해주신 것이다.

쫄깃한 면발과 얼큰한 국물이 젊은 층에 어필하겠다라시며

무엇보다도 우동시장에서 라면시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틈새시장 및 교두보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받아주신 것이다.

 

특히 인스탄트라면과는 달리 생면시장에는 특출난 일등브랜드가 없다는 것이

동원산업으로 하여금 생면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도록 하는 요인이 되었다.

어떠한 제품이든 일등브랜드가 아니면 시장을 주도하기가 매우 어렵다.

소위 후발주자로서 시장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마케팅비용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일단 동원산업이 라우동을 일등브랜드로 키우겠다고 방침을 세우자

놀라울 정도의 엄청난 마케팅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전국 1,500명이상의 판촉여사원을 동원한 프로모션 행사,

대리점에 대한 물량지원,

이홍렬씨과 강성진씨나 나와서

축구장에서 "라면이네....아니야,우동이야.....아니야.라면이라니까......"하는 그 광고였다.

엄청난 물량의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24시간 풀가동을 해도 주문량의 반도 공급하지 못할 정도로 주문이 폭주했다.

 

일간지나 스포츠신문등 여러 기관에서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지정되었다.

동원산업에서는 올해 생우동류매출을 200억원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B모라면이나 H모라면의 1년매출액이 4~500억원대임을 생각하면

시장진출 첫해에 200억원이면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올 겨울에는 한달에 무려 2백만개 이상이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월 2백만개라면 대단한 히트상품에 속한다.

 

올해는 다시 흑자가 될 것같다.

99년에 부도가 나고 2000년에 다시 흑자로 전환이 된다면

정말로 기적일 것이다.

 

식당을 오픈해보고 분점들도 여러개 내보면서 서비스업의 일도 해봤고

우동, 라면을 만드는 공장을 만들어서 제조업도 해봤고

부도도 내봤고

덕분에 임금체불로 고소도 당해봤고

화의도 경험해봤고

혹독한 노사분규도 경험해봤고

국내최초의 식품벤처기업으로 인증도 받아봤고

일간지에 히트상품으로 선정도 되어 봤고

 

 

이제 겨우 서른다섯인데................

그러고 보면 나란 녀석도 참 요란하게 살아온 셈이다.

...............참 치열하게 살았다.